지난 4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던 201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이윤수, 박준은, 이재우, 임기웅이 성균관대 출신으로 나서 대기석에 앉은 가운데, 이윤수(1라운드 6순위)가 가장 먼저 DB행, 이어 박준은(1라운드 10순위)은 현대모비스, 2라운드에서는 이재우(2라운드 8순위로 삼성행), 3라운드에서는 임기웅이 KGC인삼공사의 부름을 받아 전원 취업에 성공했다.
기쁨과 축하를 나누는 뒷자리. 하나, 드래프트 행사 직후 김상준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말과 전화 통화도 끊겼다. 지난 8일,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체육관에서 만난 김상준 감독은 “그 자리가 참 힘든 자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명이 졸업했는데, 지명이 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다행히 올해는 모두 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빨리 그 자리를 나왔다. 중앙대 감독을 할 땐 몰랐는데, 성균관대에 와서는 프로 구단에 못 보냈을 때 감독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맘껏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애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빠져나왔다”라고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16학번인 네 선수는 모두 김 감독이 고등학교 때부터 공을 들여 스카우트해 온 선수들이다. 특히 이윤수의 경우는 김 감독이 농구를 시작한 날부터 만난 인연이 있다. “중앙대 감독으로 있을 때 중학교 경기를 보러 갔는데, 그때 이상열 코치가 ‘큰 놈 하나 가르칠 것 같아요’라고 보여준 선수가 윤수였다. 이후에도 윤수를 계속 보면서 플레이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짚어주고, 고기도 사주고 했는데, 내가 성균관대 감독이 됐을 때 윤수가 고등학생이 된 거다. 그리고는 성균관대로 데려왔다.” 김 감독의 말이다.
이어 나머지 세 명의 스카우트 과정도 전했다. “용산고에 다니던 재우도 그보다 나은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내 판단에는 승부근성이 있고, 신장도 있어 가르친다면 좀 더 나은 선수가 될 것 같았다. 준은이도 학교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195cm의 신장에 슛, 수비 센스도 나쁘지 않아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기웅이는 동글동글해 보이지만, 한 승부욕 하는 선수다. 게다가 리딩이 안정적이라 데려왔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신입생 시절 대학리그 정규리그에서 순위표 밑바닥에 머물렀지만, 2학년 때는 5위를 찍고, 지난해와 맏형이 된 올해는 연속으로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그 사이 2016년에는 MBC배 4강 진출, 2017년, 2018년에는 종별선수권대회 우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입증). 올 시즌에는 고려대를 꺾고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꼴찌에 불과했던 팀을 대학 최강 팀이라고 불리는 연세대, 고려대와도 맞붙어 뒤지지 않는 ‘실력자’들로 만들어 놓으며 김 감독은 “선수들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정말 힘들다. 다행히 가능성이 있던 친구들이 성균관대를 택해줬고, 지금의 성적까지 거둘 수 있지 않았다 한다”라고 웃어보였다.
그렇다면 중앙대의 52연승 신화(2006~2011 역임)를 이끌고 꼴찌팀에 왔을 때 김상준 감독이 느낀 성균관대 첫 인상은 어땠을까. 2014년 1월이다. “해남에서 첫 훈련을 시키고 울었다니까”라고 씁쓸하게 웃은 김 감독. "그동안 체육관에서 조금씩 훈련을 하다가 처음으로 해남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트랙을 뛰는데, 그 모습을 보고 쓰러졌다. 복근 운동, 푸시업도 제대로 못했다. 그 선수들과 2주간 훈련을 하고, 이후에 고등학교 팀과 연습 경기를 했는데, 2월쯤 시소게임을 탔고, 3월에는 이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했고, 첫 승은 6경기 만에 나왔다." 61-50, 명지대를 상대로 김상준 감독과 성균관대 선수들은 함께 짜릿한 첫 승을 챙겼다.
한 단계씩 스텝업해 지금의 자리까지 온 성균관대와 김 감독. 연세대와의 마지막 한 경기를 넘지 못해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벌써부터 다음 시즌 구상으로 의지가 가득하다. 이윤수의 졸업으로 포스트가 약해진 것을 최주영이 메운다면 올 시즌 분위기를 그대로 2020년까지 이을 수 이을 것. 김 감독 역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 골밑이 약해지긴 했지만, 주영이의 약점을 겨울동안 잘 커버해주고, (양)준우랑 (조)은후, (송)동훈이가 앞선을 이끌어주면 재밌지 않을까요”라고 다음 시즌을 바라봤다.
감독 개인적인 목표는 어떨까. 명지중 코치로 5년, 중앙대의 전성기를 이끌고 난 뒤 짧았던 프로 감독으로서의 생활. 그리고 다시 꼴찌팀을 강팀으로 올려놓기까지. 2011-2012시즌 삼성의 6대 감독이 된 김 감독은 그해 13승 41패의 성적을 내며 짧은 시간 프로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정리했다. 패배는 길어져갔지만, 김승현, 이승준, 아이라 클라크가 펼친 쇼타임만큼은 김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그만의 색깔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뛰는 농구를 좋아한다.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삼성에 있었을 때는 선수들과 믿음도 믿음이었지만, 내가 어떤 농구를 할 건지에 대해 이해를 잘 못시켰던 것 같다. 중앙대 시절처럼 하면 따라와 줄 것 같았는데, 프로다 보니 그러지 않았다. 내 실수였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은 김 감독. 하지만, 대학 무대에서는 성균관대하면 풀코트 프레스를 떠올리게끔 확실한 팀 컬러를 입히며 또 하나의 경험치를 쌓았다.
프로구단에서의 러브콜이 있다면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심. “꼴찌 팀을 끌어올리면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참 많이 됐다. 기회가 된다면 프로팀에 한 번은 더 도전하고 싶다. 자존심도 회복하고 싶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전한 김 감독. 그러면서 “아마에 이어 프로 감독으로서 우승 타이틀까지 가지는 최초의 감독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의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KBL 최고의 명장 유재학 감독(93~97 연세대 코치로 재직), 허재 감독도 갖지 못한 타이틀.
성균관대 선수들만큼이나 김상준 감독도 5년이란 세월 동안 지도자로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 신호탄을 팀 역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로 쏘아올리면서 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게 했다. 김상준 감독과 성균관대의 질주는 이제 막 가속이 붙었다. 성균관대가 고려대를 꺾고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한 날, 김상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려갈 거라면,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지도 않았다.” 과연 김상준 감독은 성균관대의 지휘봉을 잡고 얼마나 더 날아오르게 될까. 또, 그의 지도자 커리어는 앞으로 얼마나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될까. 뚝심있는 김상준 감독의 행보를 주목해보자.